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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줄자 숙주들이 몰려
병원체 전파 기회 확대
가뭄이 오히려 수인성 감염병을 확산시킬 수 있다면? 최근 수십 년간 지구 육지 면적의 77% 이상이 더 건조해지는(유엔사막화방지협약 보고서) 가운데, 기후변화로 가뭄이 더 잦고 강해질수록 이런 역설적인 감염병 확산 양상이 함께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24일 국제 학술지 ‘트렌즈 인 이콜로지 앤드 에볼루션’의 리뷰 논문 ‘가뭄에 시달리다: 물 부족이 숙주-기생충 상호작용을 바꾸는 방식’에 따르면, 가뭄은 병원체와 매개체의 특성에 따라 감염병 전파에 미치는 영향이 정반대로 나뉠 수 있다. 가뭄이 심화하면 물이 부족해 상대적으로 물 매개 감염병이 줄어들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숙주가 남은 수원으로 몰리면서 병원체 전파 기회가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2013~2015년 캘리포니아 가뭄 당시, 가뭄 초기인 2014년에는 연못이 줄어들며 양서류들이 남은 물웅덩이로 몰려들어 기생충 감염이 늘었다. 하지만 가뭄이 3년째로 접어든 2015년에는 서식지 자체가 줄어들면서 감염이 급격히 줄었다. 연구팀은 이 사례를 가뭄과 질병의 관계가 단순한 ‘증가’ 또는 ‘감소’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근거로 제시했다.
이번 연구를 이끈 피터 존슨 미국 콜로라도대 볼더캠퍼스 교수는 타라 스튜어트 메릴 케리생태계연구소 연구원 등과 함께 캘리포니아 개구리 기생충을 연구하던 중 이 역설적 현상을 처음 포착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콜레라 웨스트나일바이러스 말라리아 등 물 매개 질병에 관한 기존 연구 약 100편을 종합·분석해 가뭄이 감염병 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공통된 생태학적 작용 원리를 도출했다.
존슨 교수는 “물이 사라지는 게 왜 어떤 경우엔 병원체를 없애지만 다른 경우엔 오히려 증폭시키는지 궁금했다”며 “가뭄이 질병 패턴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단순한 선형 관계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후변화는 단순히 지구를 더 덥거나 건조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가뭄을 더 변동성 있고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며 “그 예측 불가능성이 자연 생태계 질병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핵심 과제가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에서는 가뭄처럼 건조한 조건에 강한 병원체나 매개체가 상대적으로 유리해지는 경향도 확인됐다. 북미에서 나타난 웨스트나일바이러스와 세인트루이스 뇌염바이러스 확산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구팀은 수량이 줄면서 모기 유충을 잡아먹는 잠자리 유충 등 수생 포식자가 함께 감소한 것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실제 선행 연구에서는 플로리다의 주기적 가뭄이 모기 매개 세인트루이스 뇌염바이러스 확산을 늘린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물론 이와 반대되는 양상도 확인됐다. 전세계 양서류 개체수 급감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항아리곰팡이는 건조한 조건에서 확산력이 떨어졌다. 연구팀은 이런 차이를 만드는 병원체 특성도 함께 정리했다. 인간과 조류를 포함해 다양한 숙주를 감염시킬 수 있는 조류인플루엔자 같은 병원체는 홍역처럼 단일 숙주에만 의존하는 특수 병원체보다 가뭄 상황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수생 환경에만 갇혀 있지 않고 육상 동물로도 옮겨갈 수 있는 병원체 역시 상대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건조해지는 세계에서는 우세해지는 기생충과 질병의 종류 자체가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며 “어떤 감염은 특정 지역에서 사라지겠지만, 다른 조건에서는 전파력이 매우 강해져 다른 곳에서의 감염 손실을 상쇄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후변화로 가뭄이 더 잦고 극심해지는 만큼 감염병 전파 양상이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해 발생을 더 정확히 예보하고 대비 체계를 갖추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