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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터빈 대기시간 늘자 저탄소 발전 부각 … 데이터센터 전력 경쟁과 이상기후 복합재난이 견인
‘속도전이냐, 회복력전이냐’
국제 기후테크 시장이 최근 서로 다른 전선을 짜면서 빠르게 변화 중이다. 하나는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전력 경쟁이 만들어내는 ‘속도전’이고, 다른 하나는 갈수록 심화하는 이상기후발 복합재난이 빚어낸 ‘회복력전’이다. 서로 다른 결을 형성하며 성장하지만 이들 시장은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현실의 제약에 대응하는 기술과 서비스로 자본이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21일 시장정보업체 ‘커런스(Currence)’의 보고서 ‘2026년 상반기 기후테크 투자 동향(H1 2026 Climate Tech Investment Trends)’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국제 기후테크 벤처투자는 261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5% 늘었다. 이는 2022년 이후 상반기 기준 최대 실적이다. 이 증가분 대부분은 데이터센터가 견인했다. △데이원의 45억달러 시리즈C(사업 기반을 갖춘 스타트업이 확장 자금을 모으는 후기 단계 투자)와 △엔스케일의 20억달러 시리즈C 등 단 2건만으로 전체 자금의 1/4을 차지했다.
데이원은 2022년 설립된 싱가포르 본사의 데이터센터 기업이다. 아시아태평양과 유럽 8개 시장에서 인공지능 대응형 데이터센터 캠퍼스를 개발·운영 중이다. 이번 시리즈C는 코튜와 힐하우스가 주도했으며, 인도네시아 국부펀드(INA) 등이 새롭게 참여했다.
엔스케일은 2024년 아르콘에너지에서 분사한 영국 런던 기반의 인공지능 기반시설 기업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서버 등 연산 기반 시설부터 이를 연결하는 통신망, 관리 소프트웨어까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구축에 필요한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제공한다. 이번 시리즈C는 노르웨이 산업그룹 아커와 8090 인더스트리스가 주도했고 기업가치는 146억달러로 평가됐다.
◆장기 전력수요가 대규모 투자 베팅으로 = ‘2026년 상반기 기후테크 투자 동향’에 따르면,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발전용량이나 부지 확보가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얼마나 빨리 전력을 끌어올 수 있는가’가 핵심 승부처가 되고 있다. 보고서에서는 “인공지능 컴퓨팅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데이터센터 건설이 집중된 상황에서 전통적인 가스터빈 발전 설비의 대기시간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반면 여러 저탄소 발전 옵션은 상대적으로 빠르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이것이 개발업체의 결정적 우위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투자자들은 개발업체의 기반시설 역량뿐 아니라 전력 조달 경로도 함께 살핀다.
투자 흐름도 자연히 이런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2026년 상반기 기후테크 투자 동향’에서는 10대 투자 중 3건이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데이원은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장기 재생에너지 전력구매계약을 확보했고, 엔스케일은 첫 설비 입지로 노르웨이의 잉여 수력발전을 겨냥했다.
아직 상용 가동 전인 미래 전력기술에도 대규모 자금이 몰렸다. 핵융합 기업 이너시아가 4억5000만달러를, 원자력 기업 블루에너지가 3억8000만달러의 시리즈A(기술·제품을 검증한 초기 스타트업이 처음 받는 본격 투자)를 각각 유치했다. 인공지능의 장기적 전력수요에 대한 투자자들의 확신이, 기술이 실제로 전력망에 연결되기 몇 년 전부터 대규모 베팅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2026년 상반기 기후테크 투자 동향’에 따르면 로봇에 실제 물리 자료를 학습시키는 이른바 ‘피지컬 인공지능(physical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로봇용 인공지능 모델과 학습 데이터·시뮬레이션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이 다른 어떤 세부 분야보다도 많은 투자를 유치했다.
◆히트펌프 등 건물 회복력 분야 두각 = 컨설팅사 맥킨지의 보고서 ‘기후 회복력 기술: 새로운 투자의 변곡점(Climate resilience technology: An inflection point for new investment)’에 따르면, 기후 회복력·적응 기술이 2030년까지 6000억~1조달러 규모의 시장 형성 잠재력이 있는 걸로 나타났다. 실제로 최근 기업들이 실적발표나 투자자 설명회 등에서 기후 회복력을 언급하는 일이 부쩍 늘고 있다. 맥킨지가 S&P500과 스톡스유럽600 기업의 실적발표·투자자설명회·보도자료 200건을 분석한 결과, 기후 회복력 관련 용어 언급은 2021년부터 2025년 사이 55% 늘었다.
맥킨지는 기후 회복력 기술을 10개 범주로 나눠 시장 규모를 추산했는데, 그중 건물 회복력(△고효율 냉난방장치 △히트펌프 △내열·단열 소재 등)이 4000억~5000억달러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이어 △전력망(그리드) 강화(1750억~2000억달러) △회복력 있는 농업(1300억~2000억달러) △물류·공급망(1450억~1650억달러) △물 기반시설(1400억~1600억달러)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시장 확장의 계기는 복합재난의 증가다. 2024년 미국에서만 피해액 10억달러를 넘는 기후재난이 27건 발생해 이전 44년 연평균의 3배에 달했고, 2025년 상반기에만 전세계가 1620억달러 이상의 경제손실을 겪었다. 특히 2025년 1월 로스앤젤레스(LA) 일대를 휩쓴 산불 14건은 500억달러가 넘는 경제손실을 냈다. 그중 200억달러 넘는 규모가 보험손실이었다. 이는 미국 산불 역사상 최대 보험청구액이다. 다만 맥킨지는 사회경제적 성장과 △에너지전환 △위험 대비에 돈을 쓰려는 수요 확대 등 기후 외적인 요인도 함께 작용한다고 봤다.
보험 시장도 위험을 가격에 반영 중이다. 허리케인과 홍수에 취약한 플로리다주의 평균 주택보험료는 2020년부터 2023년 사이 약 55% 올라 3500달러에 달했다. 폭풍 등 악천후에 대비한 자발적 시공·지붕 보강 기준인 ‘포티파이드’ 표준을 채택한 건물 수는 2019년부터 2024년 사이 2배로 증가했다.
산불 예방이나 진압 등과 관련한 기술로도 투자가 늘어나는 추세다. 제너럴애틀랜틱의 기후 성장투자펀드는 전력회사 대상 재난시뮬레이션 기업 테크노실바에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또한 인공지능 기반 산불감지 기술을 보유한 파노는 4400만달러를 추가 유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