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변동성으로 극단적 기상현상 … "기후우울 등장, 국가차원에서 대응 전략 마련"
최근 미국이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았다. 29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일부 도시의 경우 일주일 동안 한파와 홍수 등 널뛰는 날씨에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올해가 가장 따뜻한 상위 5개 해에 포함될 확률이 99%라는 예측치를 내놓으면서 걱정은 더 커져가는 분위기다. NOAA는 올해가 지난해 보다 더 따뜻할 확률이 1/3이라는 전망도 함께 내놨다.
26일 변영화 기상청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은 "미국 북부나 캐나다 등지는 매년 최근 나타난 정도의 한파가 오곤 했다"며 "한파는 겨울에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인데, 이번에 좀 이례적인 측면은 변동성이 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북한이 우리나라보다 추운 건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나타나는 강추위가 전라도에 등장한다면 이례적인 현상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에 들이닥친 이상기후도 이러한 측면이 있는 셈이다. 변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은 "변동성 폭은 북극 지역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와 연관이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약해진 제트기류, 북극해빙 면적 줄어 = 사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한파는 한파라고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과거에도 이 정도의 추위는 있었지만 지구온난화로 전반적으로 기온이 상승하면서 예년과 같은 수준의 한파를 더 크게 느낀다는 소리다. 실제로 2023년 지구의 평균 육지 및 해양 표면 온도는 20세기보다 1.18℃ 높았다. 이는 NOAA의 1850~2023년 기후 기록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다. 또한 1850년 이후 가장 따뜻했던 10년은 모두 지난 10년 동안 나타났다.
NOAA의 수석 과학자인 사라 카프닉(Sarah Kapnick) 박사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2023년 기후분석 결과는 정말 놀랍다"며 "이처럼 지구가 따뜻해진다는 사실은 우리가 점점 더 빈번해지고 심각해지는 극단적인 기상 현상과 같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기후변화 영향에 대비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번 미국을 급습한 한파 등 이상기후의 주요 원인으로 약해진 제트기류가 꼽힌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온도가 올라가면서 극지방 냉기를 가두는 역할을 하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냉기가 종전보다 아래 지역까지 내려왔다는 분석이다.
변 기후변화예측연구팀장은 "제트기류가 약해지면 결국 특정 지역에 일시적으로 한파가 몰아칠 수 있는 환경이 더 잘 형성된다"고 말했다.
여기에 엘니뇨 영향도 더해졌다. 물론 엘니뇨는 열대 태평양 지역에 국한돼 나타나는 현상이다. 하지만 대기와 해양의 원격상관을 통해 전지구 기상·기후에 영향을 준다. 원격상관이란 대기·해양의 흐름을 통해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한다.
감시구역(열대 태평양 Nino 3.4 지역 : 5°S~5°N, 170°W~120°W)의 3개월 이동평균한 해수면온도 평년 편차가 0.5℃ 이상으로 5개월 이상 지속될 때 그 첫 달을 엘니뇨의 시작으로 판단한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엘니뇨가 더욱 강력하게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엘니뇨의 경우 지난해 봄까지 이어진 3년간의 라니냐에 이어 시작돼 지난해 여름까지 발달 속도는 역대 4위를 기록할 정도로 가팔랐다. 라니냐는 엘니뇨의 반대 현상으로 중동 태평양의 해수면온도가 평상시보다 낮아진다.
2011년~2020년은 육지와 바다 모두 기록상 가장 따뜻한 10년으로 1850년~1900년 평균보다 1.10℃ 높았다. 이 기간 중 강한 엘니뇨가 발생한 2016년과 2020년이 가장 더웠다. 특히 북극에서 1981년~2010년 평균보다 2℃ 이상 높은 기온 편차가 나타났다. 지난해 북극 해빙(바닷물이 얼어서 생긴 얼음) 면적은 가장 적었다.
◆지역환경 변화로 정신건강에 영향 = 이처럼 극단적인 기상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에는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기후위기와 관련해 불안감과 무력감 우울증 등을 호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기후변화를 육체적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정신건강과도 연관해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환경불안증' '기후우울증' 등의 신조어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글로벌변화연구프로그램(USGCRP)에서는 4년마다 국가기후평가(NCA)를 실시해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한다. 이 기관의 보고서 '기후변화가 미국인 건강에 미치는 영향 : 과학적 평가(The Impacts of Climate Change on Human Health in the United States: A Scientific Assessment)'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기후변화로 인한 직접적인 경험은 물론 사회적 영향, 자신이 속한 지역 환경변화 등은 정신건강에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높은 신뢰도). 또한 기후변화에 대한 미디어 및 대중문화 표현 역시 스트레스 반응과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중간 신뢰도).
25일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질병대응연구센터 센터장은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2024 기후전망과 전략: 10인과의 대화'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불안 등을 정신질환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면서도 "개인적 차원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기후위기가 불러오는 건강영향을 저감시키고 적응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질병관리청의 '제1차 기후보건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병이라는 질병이 따로 있지는 않고 기후변화에 따라 종전 감염병이나 만성질환 발생 양상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후 영향을 받는 질환의 평소 발생 상황을 잘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물론 이 보고서는 △폭염 △한파 등을 위주로 기후보건영향을 평가했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